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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유래 숨겨진 의미

개발자 초록공룡 2025. 8.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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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알아볼 것은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길상사를 단순한 사찰로만 알고 계시지만, 이 절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애환과 사랑, 그리고 놀라운 희생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길상사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뒤에 숨겨진 의미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기생에서 보살로 거듭난 한 여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길상사의 진정한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길상사 이름의 불교적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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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吉祥寺)라는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묘길상(妙吉祥), 즉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입니다. 흥미롭게도 길상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한 송광사의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창건 당시의 이름이 바로 송광산 길상사였습니다. 법정 스님은 길상(吉祥)이라는 말을 특히 좋아했으며, 1997년 1월 29일 창건 준비 모임에서 처음으로 '길상사'라는 절 이름을 공식화했습니다.

대원각에서 길상사로의 극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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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길상사 자리에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 있었습니다. 1979~80년대 대원각은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로, 정·재계 실력자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이 사찰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의 놀라운 결단 때문입니다.

김영한(1916~1999, 법명 길상화)은 기생 출신으로, 기명은 진향(眞香), 별명은 자야였습니다. 그녀는 6·25전쟁 후 성북동 골짜기의 한식당 청암장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요정으로 바꾸어 경영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운명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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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나이 칠순에 들어선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부처님에게 내놓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고자 한 것은 요정 터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로, 당시 시가로 1,000억 원을 넘는 거대한 액수였습니다. 지금 시세로는 조 단위를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0년간의 끈질긴 설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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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처음에 김영한의 청을 간곡히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김영한은 10년 가까이 법정 스님을 찾아와 끈질기게 부탁했습니다. 마침내 법정 스님은 1995년 그 청을 받아들여, 같은 해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5월에는 대원각 부동산 등기를 마치고 이름을 길상사로 바꾸어 재등록했으며, 같은 해 12월 14일 역사적인 개원법회를 봉행했습니다.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백석과 나타샤의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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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은 일제강점기 시인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등장하는 나타샤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석은 연인이었던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고 전해집니다. 기생 시절 김영한은 시인 백석을 사모했으나, 해방 후 백석은 월북하게 되었습니다.

1,000억 원의 큰 돈을 기부한다고 했을 때 여러 사람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자, 김영한은 '그 돈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그녀의 순수한 사랑과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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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는 개원 이후 종교를 뛰어넘는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2005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초대해 '길상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가 직접 조각한 관세음 보살상과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한 7층 석탑을 보유하고 있어 종교 화합의 의미를 더합니다.

길상화 보살의 마지막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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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가 개원하고 2년 후인 1999년 11월 14일, 김영한은 '나의 유해를 눈이 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은 화장 후 경내에 산골되었으며, 현재 경내 작은 골짜기 건너편 사당에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법정 스님과 길상사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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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길상사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임종을 앞두고 강원도 오두막집에서 길상사로 옮겨져 2010년 3월 11일 입적했습니다. 현재 진영각에는 법정 스님의 영정과 저서, 평소 쓰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누더기처럼 해진 법복은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QnA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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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길상사는 언제 세워졌나요?
A: 길상사는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로 등록되었고, 1997년 12월 14일 공식 개원했습니다.

Q: 대원각은 어떤 곳이었나요?
A: 대원각은 1979~80년대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로, 정·재계 실력자들이 즐겨 찾던 고급 요정이었습니다.

Q: 김영한이 기부한 재산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A: 당시 시가로 1,000억 원을 넘는 액수였으며, 현재 시세로는 조 단위를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Q: 법정 스님이 처음부터 시주를 받아들였나요?
A: 아닙니다. 법정 스님은 처음에 사양했으나, 김영한의 10년 가까운 끈질긴 설득 끝에 1995년에야 받아들였습니다.

Q: 길상사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라는 의미로, 문수보살의 별칭인 묘길상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입니다.

Q: 김영한과 백석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A: 김영한은 기생 시절 시인 백석을 사모했으며,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Q: 길상사에서 종교 간 화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A: 김수환 추기경과의 교류, 천주교·기독교 신자들의 기증품 보유 등으로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김영한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이었나요?
A: '나의 유해를 눈이 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현재 경내에 산골되어 있습니다.

Q: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서 어떤 생활을 했나요?
A: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 머물며 수행했고, 2010년 3월 11일 이곳에서 입적했습니다.

Q: 현재 길상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A: 서울시민의 수행공간이자 종교를 뛰어넘는 만남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길상사 불교대학도 개원했습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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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의 유래는 단순한 사찰 창건 이야기를 넘어서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생에서 보살로 거듭난 김영한의 무소유 정신, 10년간의 끈질긴 설득과 법정 스님의 자비로운 수용, 그리고 백석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현재의 길상사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애환과 종교적 화합, 그리고 진정한 보시정신이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그럼 여기까지 길상사 유래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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